세계 경제가 `대침체`라는데 `공황`과 어떻게 다르나요?
Q. 경기도 사이클을 탑니다.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도는(순환) 것처럼 경기도 호황기 후퇴기 불황기 회복기를 반복하죠. 요즘 경기상황을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침체(Recession)와 공황(Depression)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이번 주는 이한나 한국은행 모형분석팀 조사역이 경기 상황에 대해 설명합니다.
경기 사이클
A. 공황과 침체는 둘 다 경기 불황을 일컫는 말이죠. 다만 강도나 지속기간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공황이 좀 더 세다고 할 수 있죠.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좋은 향기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에 있어서만큼은 그 시대에 붙일 이름을 정하는 데 신중해야 하지요. 영향력 있는 누군가 불황이 왔다고 단언한다면 사람들은 미리부터 겁에 질려 소비와 투자를 꺼릴 것입니다. 앞날이 불확실한데 함부로 돈을 쓰거나 기업들이 투자할 리 만무하죠. 결국 그냥 두었으면 살아날 경기마저 꺾여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
전문가들은 요즘 경제를 무엇이라 부르고 있을까요.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대침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침체 기간이 길어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폴 볼커 전 중앙은행(Fed) 총재마저도 지금 시대를 일컬어 ‘대침체’라는 표현을 쓰곤 하죠. 굳이 ‘그레이트(great)’란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이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라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그저 경제상황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해서 침체라는 표현을 바로 쓰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공식적으로 경기침체란 경기 순환(흐름)의 정점(고점)에서 저점으로 이동하는 구간을 뜻하거든요. 그리고 그 정점과 저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청, 미국에서는 전미경제조사국(NBER)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사후에 역사적 기록으로 지정합니다. 대략 3~4년이 지난 후에야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건대 그때 경제가 좋았다(혹은 나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간편하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일 때 ‘침체’라고 판단하는 기준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 우리나라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절대 수준의 하락보다는 성장추세가 꺾이는 정도로 가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죠.
◆ 공황과 침체의 차이
공황은 단순한 경기침체보다 경기하강의 정도가 심각하고 또 지속기간이 긴 개념이에요. 경기침체가 경기순환에서 거쳐 가는 과정이라면 공황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가깝습니다. 미국에서 1930년대 발생했던 대공황의 사례를 볼까요. 이때 미국은 3년 만에 산업생산이 45%나 하락했고, 실업률은 25%에 달했습니다. 참고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최근 미국의 실업률이 8%라고 하니 실업률이 엄청나게 높았던 거죠. 이처럼 공황은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진 나머지 다수의 기업과 가계가 파산하고 금융패닉이 겹쳐져 경제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입니다.
미국 내 공황은 세계 경제에 큰 후유증을 남겼어요. 제2차 세계대전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고, 이를 계기로 국제통화질서도 바뀌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발발할 무렵에도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양상에 각국은 이를 방지하는 통화·재정적 노력을 기울였죠.
대공황을 타개했던 케인스의 교훈을 되새기며 전 세계가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폈죠.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각국이 기준금리를 과감히 내린 겁니다. 아직 경기침체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미국 등 선진국들은 여전히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죠.
대공황 당시에는 글로벌 정책공조도 없었고 중앙은행도 위기극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런 노력 덕분에 대공황을 피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도 침체와 공황을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 분야에 ‘애정남’이 나타나 ‘이웃사람이 실직하면 경기침체고, 내가 실직하면 공황’이라고 딱~정해줘도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이름을 무엇으로 부르건 경기침체는 개인과 사회에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GDP의 급격한 하락은 막았지만 이 시대를 대침체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는 것이 진정한 경제학의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한나 < 한국은행 모형분석팀 조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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