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 전기자동차 ‘향방은?’
특집기사 ㅣ 강정수 기자 ㅣ 입력 : 2012.08.31
거북이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전기자동차 시장과 관련, 미래 자동차 산업 경쟁에서 생존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만큼 향후 다가올 변화에 준비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전기자동차 관련 기업들과 정부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더디게 움직이는 전기자동차 시장 대응은 느리지 않아야’한다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피력했다.
전기자동차 시장의 부진에 대해 이 보고서는 우선 가격을 꼽았다.
광고 매체를 통해 보이는 전기자동차는 참으로 매력적인 수송수단이다. ‘승용차 운전자의 대다수는 하루에 2시간 미만으로 승용차를 사용합니다. 하루 평균 80km 미만을 주행하는 운전자는 이제 급등하는 연료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솔깃한 말이었다. 하지만 시장에 소개된 지 5년이 돼가고 본격 출시된 지도 3년 차가 되는 전기자동차의 점유율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아직 0.1% 미만이다. 점유율로만 보면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는 소비자로서는 구매할 만한 가치가 없는 승용차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보조금을 반영해도 동급 기존자동차 대비 최소 20%, 최대 2배까지 비싸다는 점도 한 몫 한다. 평균적으로 자동차 한 대 만드는데 2만여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은 기존자동차 대비 최소 50%, 최대 80%까지도 줄어든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전체 부품에서 50%가 넘는 부품이 제거됐으니 전체적으로는 가격이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많이 올라갔다는 데 있다. 이는 한대당 천만 원을 호가하는 2차전지에 있다.
가격 인상의 주범인 2차전지의 원가는 기업들의 집중된 투자로 상당 부분 낮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2차전지 원가 개선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나머지 수천 개의 부품에 대한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되는 실정이다.
전기자동차 가족과 타기에 불안?
전기자동차를 가족과 함께 마음 편하게 타기에는 아직 안전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부족한 사용 후기와 전기자동차 사고 소식 역시 발생 빈도는 낮지만 불안감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이제 시장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기자동차를 가족과 함께 타기에는 아직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특히 지금까지 사용하던 자동차와 비교, 저소음에 친환경적이지만 기본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을 정도로 제품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전했다.
기존자동차의 20% 수준에 불과한 주행거리 때문에 장거리 여행에 대한 기대는 일찍이 저버렸다고 해도 최고 속력 수준은 기존 대비 상당히 부족하다. 가끔 도로 상에서 보이는 ‘저속 전기자동차 진입 금지’ 팻말과 몇 분, 길어야 십 여분이면 주유에 이어 자동세차까지 가능한 기존 주유 습관에 비해 평균 4시간 이상이 필요한 충전의 불편함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기자동차만의 고유한 매력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고객의 감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색다른 디자인으로 형성한 전기자동차만의 특별함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전기자동차 시장 거대 기업들 대거 진출
2010년 5월 1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5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자동차를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GM 파산선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기자동차를 통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되살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성장 동력을 물색하던 주요국들도 앞 다투어 전기자동차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주요국 정부가 발표한 수치만 산술적으로 합산해도 최소 500만대가 넘는, 실로 전기자동차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우리 주변에서 전기자동차를 쉽게 접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이 믿기 시작했다. 실제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좌우하는 GM, 르노-닛산, 미쓰비시 등 거대 기업들이 물밀 듯이 전기자동차 시장에 등장했다.
2차전지에 대한 공격적 투자 감행
2007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통해 시장에 처음 공개된 GM의 Volt는 리터당 100km에 달하는 믿기 어려운 연비를 강조하며 2010년 말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출시 첫해부터 연간 5만 대를 생산하겠다고 장담한 닛산은 2012년까지 연간 50만 대의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이 투자하는 회사로 관심을 받던 중국의 BYD는 한번 충전으로 300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자동차인 E6를 발표했다.
전기자동차의 본격 양산 시점에 맞추어 각국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대당 천만 원에 가까운 지원금은 물론, 각종 세금 면제, 주차장 할인 등 시선을 끌 만한 지원 방안이 등장했다.
누구도 전기자동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전기자동차에 대해 쇄도하는 사전 주문량만으로도 연간 판매 목표를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었고, 대표적 친환경 산업으로서 전망도 유망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의 심장이라 불리는 2차전지에 관한 관심은 더 뜨거웠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던 수많은 기업이 전기자동차 시장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2차전지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결정한다. 2차전지로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됨은 시장의 요구에 답하는 ‘싸고, 좋고, 빨리 충전되는 2차전지’의 출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암시해 주는 듯 했다.
시장 반응 ‘냉정’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12년 1분기, 프랑스에서 판매된 자동차 중에서 전기자동차의 비중은 0.2% 미만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기자동차의 본격 양산 첫해인 2011년의 실망스러운 글로벌 시장 점유율 0.07%는 아직 본격 성장을 위한 준비운동 단계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를 주도하는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의 실망스러운 실적에 이어 전기자동차 산업의 마지막 보루로 느껴지던 유럽에서마저 전기자동차의 성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의 실정도 다를 바 없다. 글로벌 전기자동차는 아예 수입조차 되지 않았고, 국내 기업에 의해 개발된 전기자동차의 본격 출시가 임박했다는 기사만 난무한 채 실제로 운행하는 전기자동차를 우리 주변에서 보기는 쉽지 않았다. 전기자동차 전문 기업을 표방하던 국내 중소기업의 파산 위기,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전문 기업으로서 한국에 전략적으로 투자했던 A123의 철수 등 우리나라의 전기자동차 시장은 펴보지도 못하고 위축될 위기에 처해있다.
불확실한 시장 전망은 자동차 기업의 신차 개발 전략에 영향을 미쳤고,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한 각국 정부의 정책도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글로벌 경기불황은 초기 수용자들의 적극적 구매 의지도 꺾어버렸다. 결국, 전기자동차 성공의 삼각편대인 기업, 정부, 그리고 소비자가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당장 시장성과가 눈에 보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클린 디젤 자동차 등이 친환경 자동차의주역이라 주장하며 득세하게 됐다. 전기자동차의 명맥은 기존자동차의 디자인이나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비용을 최소화한 모델로 이어지면서 외관은 기존자동차와 유사해 보이는데 성능은 부족하고 가격은 턱없이 비싼 전기자동차마저 나타나게 된다.
전기자동차는 급증하는 온실가스, 그리고 발굴에 한계가 있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고민을 해결하는 궁극적 대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전기자동차가 주류 시장에 등장하는 시점’ 이다.
‘고연비’와 ‘소형화’ 화두
현재 전기자동차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만연하다. 10년 뒤에도 자동차 시장에서 2% 미만을 점유하는 틈새시장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 이해관계자 입장에서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시장 상황에 따른 현실적 선택은 기존자동차인 내연기관 자동차에 집중하거나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장선상에 놓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개발에 역점을 두는 전략이다. 현 시점의 전기자동차는 가격, 완성도, 사용자 만족도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기존자동차에 집중함으로써 기존에 보유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시장의 최근 흐름도 남다른 디자인이나 차별적 성능보다는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최근 개최됐던 베이징 모터쇼에서 대두된 주요 화두는 ‘고연비’와 ‘소형화’였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자동차에 대한 실질 구매력이 감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지난 몇 년간 ‘매연 제거’를 강조하는 전기자동차에서 찾던 친환경의 해법을 ‘연비 효율 개선’에서 찾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시장 발전 가능성은?
LG경제연구원은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가 전기자동차로 짧은 시간에 반전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발되면서 유가가 급변한다든가 혁신 전지의 등장, 그리고 스마트폰의 애플 같은 특출한 사업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면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열릴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의외로 빨리 열린다면 준비가 부족한 자동차 기업들은 당황 할 수밖에 없고. 애플이 아이폰으로 시장을 평정해나갈 때 준비가 부족했던 글로벌 휴대폰 기업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글로벌 기업과 국가들의 대응
많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 또는 부품 기업이 더딘 시장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리드하기 위해 전기자동차 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BMW의 i 시리즈는 전기자동차 전용으로 디자인되고 설계된 최초의 자동차이다. BMW의 기술 담당 매니저는 “i 시리즈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포괄적 접근법을 활용해 신소재부터, 주요 기능, 디자인, 생산 공정까지 일괄적으로 개발한 자동차로서 출발 자체가 전기자동차”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고효율 친환경 자동차로서 기존자동차와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 전기자동차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전기자동차 개발에 뛰어들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전기자동차 개발의 당위성을 설명한 카를로스 곤이 CEO로 있는 르노는 지난해 말부터 4종의 전기자동차를 차례로 시장에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르노는 2차전지 팩을 임대해 판매 가격을 낮추는 사업 모델, 2차전지 팩을 교환해 충전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화 하는 충전 모델 등을 개발하며 전기자동차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복안이다.
부품 기업들도 전기자동차 전용 부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포스코는 전기자동차 특성에 맞는 강판을 개발했다. 무거운 2차전지 때문에 무게에 관한 부담이 크던 전기자동차 기업에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존 강판 대비 무게를 25% 낮춘 전기자동차용 강판은 전기자동차 전용 샤시 모듈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이 외에도 전기자동차용 조향 장치, 주행 시 소음 발생을 통해 보행자의 주의력을 상기시키는 주행 보조 장치 등 지금까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던 부품들의 전기자동차 전용화가 더디지만,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올해부터 전기자동차에 대한 보조금을 오히려 30% 넘게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전기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육성 방향에 대해 혼선을 겪던 중국도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 계획’을 발표해, 전기자동차 산업 육성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본산인 독일도 2020년까지 100만대, 2030년까지는 600만대의 전기자동차를 자국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전기자동차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내수 시장에서 2015년에 전기자동차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비중을 20% 이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확연하지만, 정부의 보조금이나 지원 정책에서 일관된 목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고, 관련 기업들의 적극적 사업 의지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꼬집고 있다.
가격 경쟁력보다 제품 완성도에 집중해야
LG경제연구원 신장환 책임연구원은 “많은 전기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2차전지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2차전지는 전기자동차 성능 및 가격 수준에 매우 중요한 부품이지만 전기자동차의 경쟁력을 올리는 실마리가 2차전지에만 달린 건 아니다”며 “2차전지 가격이 낮아지면 전기자동차는 팔리기 시작한다는 단편적 생각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기자동차 제품 자체의 완성도 개선’이라는 과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기자동차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시장 분위기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
신 연구원은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기업 간에 수평적인 협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기업 간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협력 수준도 높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뒤 “기존자동차는 엔진을 변경하면 차체 전반적인 설계 변경이 수반됐지만, 전기자동차는 차체와 각종 모듈 또는 부품이 독립적으로 결합할 여지가 크다. 기존자동차 산업에서 볼 수 있는 ‘완성차 기업이 주도하고 부품 협력 기업이 따라오는 방식’이 아닌 ‘수평적 분업 관계로 모듈을 구성하는 방식’에 기반을 두고 설계 단계부터 개방적으로 이견을 조율하는 대등한 관계 형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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