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l 열정을 찾는 이들의 원더랜드 여행기 Vol 1

 

 ‘왜 언어가 추상적이라는 것일까? 언어는 모든 존재를 가장 정확하고 상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닌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언어는 매우 실존적이다. 다시 말해, 매우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어느 시간대 그리고 공간 속에서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무엇도 언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추상적이다. 생각해보자. 추지웅씨는 대덕연구단지 소속의 반도체 연구원이다. 그는 컴퓨터는 물론이거니와 전기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에게 반도체를 이해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추지웅씨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원주민은 반도체에 대한 대략적인 이미지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를 찍은 사진 즉,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원주민은 그 정확한 원리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반도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전달의 도구이다. 그리고 오히려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미지 중의 큰 단락을 이루고 있는 사진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매우 구체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진을 좋아하는가? 혹은 ‘나의 취미생활은 사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최근 들어 국내 사진인구는 매우 큰 폭으로 증가했다. 유명한 공원이나 한강 등지에서 출사(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는 것)족들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전에는 전문가나 사용할 법한 DSLR 등 고급기종의 카메라를 일반인의 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사진에 대한 이해도 측면에서 봤을 때, 질보다 양적 팽창 속에서 이루어졌기에, 이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 전 국내 모 갤러리에서 전시된 세계적인 사진작가 토마스 러프의 작품이 고미술품에 버금가는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던 적이 있다. 혹자는 이러한 사례가 사진가의 능력이나, 작품의 수준에 따라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매우 부분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감히 말하건데, 아직 국내 아마추어 사진계는 덜 여물었다.

 세계 여자 핸드볼을 석권한 덴마크, 노르웨이의 실업 팀이 천 여 개가 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로가 흥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내 사진 작가들의 작품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밑을 받쳐주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기반이 단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수준 높은 작품을 이해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최근 들어 고사양의 카메라 기종이 보급되면서 기술적인 측면에만 의지하는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엡손, 니콘 등 카메라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사진을 보는 ‘눈’ 보다는 다루는 ‘기술’에만 초점을 맞춘 프로모션을 벌이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기업논리에 따른 것이지만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국내 사진계를 점차 고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상마당이 나섰다.

 

  2005년 온라인에서 시작한 상상마당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 있어서 여러 가지 지원을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사진’은 비중 높게 다뤄진 편이다. 상상마당 사진 창작 스튜디오에서는 ‘사진’에 대한 지원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전문사진작가를 지원하는 ‘스코프’와 생활예술사진가를 지원하는 ‘SLAP’이 그것이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진다. ‘전문사진작가들과 생활예술사진가들을 왜 구분 지어 지원하는가?’, ‘전문가들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나무만을 보고 정작 중요한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높은 수준의 아마추어 기반 층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이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상상마당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생활예술사진가들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교육과 전시 그리고 출판을 통해 일반교육에서는 접할 수 없는 대안교육과정으로서 대중들과 열린 소통을 하고자 SLAP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SLAP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포트폴리오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SLAP의 매 기수는 10~20명 사이의 적은 인원을 선발하기 때문에 지원 경쟁이 매우 치열한 편이다. 특히 전문사진작가가 아닌 생활예술사진가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선발 기준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원자들의 현재 실력이나 작품의 깊이 보다는 사진에 대한 열정과 가지고 있는 발전 가능성에 높은 비중을 두고 선발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선발과정을 통해 뽑힌 SLAP 참가자들은 12주에 걸친 교육과 전시 그리고 출판을 통해 심도 있는 학습을 하게 된다. 이 중 12주의 교육과정은 선임강사의 사진 비평을 통해 SLAP 전시 및 에세이 집에 실릴 사진을 다듬어 가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SLAP 본래 기획의도에 맞게 선임작가 및 평론가의 강평을 통해 사진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작업 방법을 학습함으로써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기반을 다지는 것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리고 교육에 이은 사진 에세이 집 출판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사진과 텍스트와의 올바른 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SLAP 한 기수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최종 전시회는 그 동안 준비해온 작품을 통해 작가와 대중이 소통하는 자리로써 의미를 가진다.

 

 

 정리해보자. 생활예술사진가가 무엇인가? 바로 사진에 있어서의 하이 아마추어(High Amateur)이다. 하이 아마추어의 등장은 앞서 언급했듯이, 고급 기종의 장비의 대중화와 단순한 취미 활동에서 벗어나 조금 더 높은 수준을 향유하길 바라는 사회 일련의 흐름에 기반한다. 이러한 욕구를 가진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만족을 위해 상상마당에서는 기존 제도권에서는 볼 수 없는 대안 교육과정을 준비하였고, 그것이 바로 생활예술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SLAP’인 것이다.

 

 

 SLAP 1기와 2기 수료생 29명의 생활예술사진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수료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2명은 개인 사진전을 꾸준히 개최하는 등 전문사진작가로써의 발돋움을 하고 있다. 이처럼 수료 후에도 더 멀리 그리고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사진’에 대한 높고 깊은 영역을 향유하려는 이들을 우리는 생활예술사진가라 부른다.

  

 

 

Q) SLAP은 전문사진가 육성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사진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하이 아마추어(High Amateur)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SLAP 선발 기준에 반영이 되나요?

 

A)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전문사진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깊이나 질적인 측면에 많은 비중을 두지는 않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통해 사진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끝까지 같이 하실 수 있는 분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하고 있으며, 또한 발전가능성이 높은 분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Q) 사진을 본업으로 하는 전문사진작가들이 아닌, 사진을 취미의 연장선상으로 두는 아마추어 분들을 대상으로 하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직종의 조합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금 이외의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나요?

 

A)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요. 글을 쓰는 작가 분, 그리고 기자 그리고 디자이너 분들이 계시죠.

 

Q) 이처럼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모여서 12주라는 짧지 않은 기간 함께했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하나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에피소드라고 하기보다, 다양한 직업군 들이 모이다 보니 기존의 사진 전공자와는 달리 세상을 정말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껴요, 다시 말해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시각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에피소드 아닌 에피소드인 것 같아요.

  

Q) SLAP 1기와 2기는 합해 29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 이번 3기는 단일 기수로써 21명을 선발하셨는데요, 이러한 수치상의 변화를 생활예술사진가들에 대한 지원을 증가하는 추세라는 시각으로 봐도 될까요?

 

A) 그렇다기 보다는 선발과정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 같아요. 저희는 인원을 정해서 선발하기 보다는 포트폴리오를 보고 발전가능성이나, 열의 등을 기준으로 하여 요건이 충족되는 분들을 선발하기 때문에, 말씀하신 선발 인원의 변동은 저희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분들이 얼마나 지원하시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Q) 이번 SLAP 3기 경쟁률이 3:1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낮은 경쟁률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SLAP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고, 또 개인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지원하신 분들 즉, 알짜배기들간의 경쟁이었기에 체감 경쟁률은 무척 높았을 것 같아요. 다음 기수에 도전하시는 분들은 이러한 점을 가장 걱정하실 것 같은데요. 4기를 희망하시는 분들께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사진에 대해 열정에 있고, 깊게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저희 프로그램의 목적이기 때문에 경쟁률에 대한 걱정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 열의를 저희에게 보여주시면 큰 어려움 없이 저희와 함께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Q) 성함과 본래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요?

허윤정) 저는 허윤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홍병훈) 산업디자인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홍병훈입니다.

 

 

Q) SLAP이라는 프로그램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전시를 와서 보니 너무나도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사진을 시작하셨나요?

허윤정) 저는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사진을 시작한 건 2년 전이예요.

홍병훈) 사진을 시작한지 4년 정도 되었어요. 주변에 친구들이 하나 둘씩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사진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책도 사서 공부하고, 카메라도 구매하고 이런 식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Q) 다양한 본업을 가진 스물 한 분이 모여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허윤정)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저희가 처음 만나고 3개월 동안은 서로 어색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마도 다들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난 후 부터는 오히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는 관계가 되었죠. 그런 점이 무척 의외였고 좋았어요.

홍병훈) 에피소드라기 하기 보다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주변 사물을 바라볼 때, ‘저렇게도 시선을 가지고 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Q) 이번 전시의 주제가 ‘21명의 생활예술 사진가 Wonderland에 빠지다’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주제를 듣고 피터팬이 사는 아름다운 동화 속 나라를 떠올렸습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주제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셨나요?

허윤정) 제 작품은 ‘동물원’을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 Wonderland라는 주제를 듣고 떠올린 것은 ‘어린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그 어린 마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동물원을 생각하게 되었죠.

홍병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세상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Wonderland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Wonderland라는 공간 자체를 주목 할 것이 아니라 그 곳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시점에 초점을 맞췄지요.

  

Q) SLAP를 수료한 작가님들은 생활예술사진가, 또는 하이 아마추어(High Amateur)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다른 아마추어 사진가들보다는 조금 더 사진에 있어서 높은 곳을 봤다고 생각하는 데요.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 사진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허윤정) 저는 사진 에세이집을 준비 중 이예요. 제가 펴내는 사진 에세이집을 통해 자기를 개발 혹은 수양하거나, 재 충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홍병훈)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진을 액자 속에 넣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예요.  조금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러한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개인전을 갖고 싶어요.

 

 

Q)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아마추어로써 이런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전시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기회임과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이러한 도움을 준 상상마당 측과 이번 전시를 보러 온 사진을 좋아하는 또 다른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허윤정) 우선 박태희 선임강사님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강사님께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봐주시고 용기를 주셨어요. 그리고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께는 작품을 왜 찍었을까? 이 곳은 어디일까? 라는 것 보다는 그 자신이 사진 속에 있다고 생각해보고 그 느낌을 감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홍병훈) 교육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만나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준 상상마당 측에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전시를 보러 온 분들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었어요 제 작품의 제목을 사진을 보러 오신 관객들께서 지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더랜드로 떠나는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하고 그 종착점에 어느 덧 도달할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아니 그보다 자신의 열정을 찾는 이들의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함께 하고 싶다면 상상마당에 지금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 제 2기 서포터즈 박종서

사진> 상상마당, 제 2기 서포터즈 박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