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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상상마당 서포터즈 2기 (2010~2011)/ETC...

북살롱 | 에로영화 매니아 그리고 김태훈 <스크랩>

by Warm-heart 2010. 6. 25.

지난 6월 21일 저녁 7시 홍대앞 상상카페에서는 팝칼럼리스트이자 연애카운슬링으로도 유명한 김태훈님의 향긋한 북살롱이 진행되었다. 김태훈을 기다리는 목마른 독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담담한 표정으로 사회자 마이크를 쥐는 그 사람. 어서 김태훈님을 소개해 주세요! 라는 절박한 눈빛 속에 그가 고백을 시작한다.

 

 "늘 사회자 역할만 해오던 제가 작가로 이런 자리에 참여하기는 처음인데요. 낯설고 설레네요. 참 어색하죠. 이 타이밍이면 어서 저자를 모셔야만 할 것 같은데..."

 

  좌중 웃음바다가 번졌다. 그는 김태훈. 1969년생 닭띠 남자. 오후 5시 30분 태생으로 닭이 모이를 먹고 잠들 시간에 태어나 인생이 평탄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씀과 달리 우여곡절이 많았던 운명이다. 일단 그는 평탄하지 않은 가정사 아래서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양지극장을 들락거리며 인생 최고의 영화 "쾌걸조로"를 보고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알았다. 그리고 이미 중학교 때 잘나가는 아파트촌에서 술과 담배를 일찍 깨우쳤으며 7/15의 비율로 천호동 에로영화를 섭렵한 뛰어난 에로영화 매니아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네가 대학을 가는 건 서울대 2배의 결실을 낸거다."라는 담임의 말을 현실화 시키는 기적을 이루었고 대학에 들어가 춤꾼으로 날리다가(이때 독자들의 놀라움이란!) 운동권 학생회장의 변사체를 보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 이후 여러 활동을 하여 총학생회장의 자리까지 갔으나 회의감을 느끼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작년 2월 졸업을 하셨다고 한다. 아직도 네이버에는 대학 중퇴라는 학력으로 뜨지만 고치지 않는 이유는 "그게 더 폼나잖아." 이다. 이쯤되자 김태훈의 역사가 김태훈을 말해준다고 느끼는 시점이었다. 

 

멋대로 살았지만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가 이 번에 낸 책의 이름은 김태훈의 [랜덤워크]이다. 책제목에 고민이 많았는데 함축적인 의미를 말하자면 좋아하는 것을 쫓아 살아왔지만 어찌보면 유일한 산택이었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산 것이 아닌 삶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고 한다. 책의 성격을 보면 그가 무비크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칼럼을 엮고 거기에 하고싶은 말을 덧붙인 에세이 형식이다. 그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으면서 영화를 분석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반감이 있었으나 "30대 남자의 일상 속에서 영화는 어떤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호기심에 집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일주일 단위의 주간지 칼럼의 글로 책을 낸다는 점에서 고사를 많이 했지만 정작 내고 보니 책이 "가벼워서 좋다."는 사람이 많았다니 정말 인생의 변수는 예측 불허인 듯하다.

 

  이어 그는 자신이 뽑는 최고의 영화 5편과 최고의 음악 5편을 소개하며 각각 영화와 음악 속의 사연과 느낌을 전했다. 이 때 독자들을 비롯해 서포터즈 역시 유익한 정보와 입담을 동시에 들려주는 그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방대한 지식과 썰을 풀어낼 수 있는거지? 이런 의문을 마지막으로 그는 책을 읽으신 독자분이라면 자신이 왜 이런 영화와 음악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며 모호한 호기심을 남겼다. 정말이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력의 소유자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다.

 

김태훈이 뽑은 최고의 영화 5

1위 카사블랑카 -Dir 마이클 커티즈

2위 바더마인호프 -Dir 울리에델

3위 빅피쉬 -Dir 팀버튼

4위 토니 타커타니 -Dir 이차카와준

5위 하하하 -Dir 홍상수

 

김태훈이 뽑은 최고의 음악 5

1위 Because   비틀즈

2위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류이치 사카모토

3위 Vivald`s song     Mark -Almond

4위 River   Joni Mitchell

5위 8Mile   Eminem

 

독자와 질문 답변 시간

 

Q. 김태훈님의 입담은 탁월한 기억력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계신건가요?

A. 전 방대한 지식이 없어요. 방송매체를 타는 사람일 뿐이지요.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의 서재에 음악CD가 2만장 넘게 있습니다.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제가 부끄러워지는 건 사람들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안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게 들통났을 때 저는 이민을 가야겠죠.(웃음)

 

그리고 기억력이 안좋아요. 저는 대학을 수학으로 갔습니다. 문과인데도 말이죠.(좌중웃음) 그냥. 좋아했어요. 영화를 좋아하면 울기도 하고 주인공도 되고 내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사가 외어져요. 머릿속에 박히면 '음미' 하는 거죠. 저는 무언가에 능숙하는 데에는 절대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고. 그렇게 올라간 산은 8시간 등반이 어렵지만 정상에서 이 산 저 산 높은 곳끼리 이동하는 건 쉽거든요. 이 것이 장르의 변환에 적응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Q.제가 이야기를 들은바 김태훈을 정의내리자면 여러장르와 행위를 넘나드는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랜덤워크를 읽으며 글 속에서 남자 특유의 "나 그래도 제법 괜찮은 놈"이란 자위가 느껴지는데요.(좌중웃음) 이처럼 다양한 매력의 소유자께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싶은건지 궁금합니다.

A.예전에 통화를 하다가 "넌 나쁜 새끼야."라는 말을 듣고 쇼크를 받은 적이 있어요. 흉악범도 자기가 나쁘다는 생각은 않하거든요. 그 건 자신을 쳐다보는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죠.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시간이 지나자 내게도 문제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보니 저는 옛날 남자에요. 소위 마쵸라고 하는 가부장적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의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죠. 그게 많이 안맞았겠죠. 아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하죠. 창피하네요.(좌중웃음) 연애칼럼을 낼 때 남자분들께 지탄을 많이 받아요. 길을 가며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성적공상에 시달리는지 다 말하기 때문이죠. 저는 요즘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사진도 배우구요.

 

Q.SBS에서 라디오 DJ 하실 때 좋아했습니다. 또 하고 싶으신지요?

A.예전에 꿈은 라디오DJ였어요. 뮤지션은 실패했기 때문에. 경인방송에서도 라디오 DJ를 제법 했는데 점차 자리를 잡다가DMB를 탔죠. 위성KBSDMB최초의 DJ가 접니다. 그런데 어느날 라디오10년만에 인지도가 없다는 이유로 짤렸어요. 인지도는 어떻게 아느냐.라고 하자 TV에 나왔다 오면 생긴다고 해서 방송을 하게 된거죠. 그래서 활동반경이 넓어진건데 라디오DJ 마음은 있지만 목표는 아닙니다. 그건 누가 시켜줘야 하는 일이거든요. 제 꿈은 좀 더 능동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해요.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불러라. 내 발로는 안간다. 이거지요.

 

Q.[강심장]에서 여러 명언을 날려주셔서 MC였던 강호동도 쩔쩔매었는데 요즘 안보이시니 혹시 "외압"이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100분 토론에 나가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A. 주제에 맞다면 가겠지만 주제를 잘 모른다면 안갑니다. 토론이란 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거든요. 제가 트위터를 안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말이 많으면 트위터에서 사고를 낼 것 같아요. 필터링이 되지 않은 생각이 튀어나오는 사고 말이죠. 그리고 시사프로는 냉철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급을 논하기 전에 상식이 통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심장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곳인데 보통 부모님 혹은 연인의 이야기를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각자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별반 다를리 없고 지나간 연인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언급해야 하는 일이 생겨도 저는 최소한의 상황만 주고 발을 뺍니다. 지나간 연인은 어느순간 인생에서 빠져줘야 해요.

 

Q.김태훈님과 저는 같은 해 태어난 남자지만 살아온 길이 참 다른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청춘이라는 약간의 착각이 저와 닮았고 전 좋아요. 열심히 한 우물을 파고 보니 이렇게 되신건가요? 그리고 쇼프로그램 속에서도 철학이 보이는데 그건 어떤건가요?"

A.좋아하는 걸 쫓아가기도 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었죠. 저의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그랬다는 군요."태훈이 봐라. 졸업장 없이 세상에 나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했겠니."라고. 저는 고등학교때부터 공부가 재미없었어요. 그리고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포기하면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상대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으면 싸우지 않아요. 때문에 공부로 다른 아이들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으므로 일찍 놓았습니다. 다만 남들이 공부한 만큼 난 극장에 오래 있었죠. 잡지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말빨로 특채 면접을 본 뒤 외국계기업에 입사하기도 했습니다. 영어가 안되서 애를 먹었지만 그곳을 나오면 갈 곳이 없기에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구요. 서른 다섯 늦깍이로 방송작가를 했습니다. 음악 관련된 일이 좋았고 다른 선택이 많지 않아서 열심히 하게 된겁니다. 늦은 나이의 시작인만큼 생긴대로 가겠다는 마인드가 강했어요.그래서 악플에 별 영향 안받습니다. 

 

  쇄도하는 질문을 시간 관계상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 팬사인회를 진행했고 정말 평범하디 평범하게 생긴 외모에서 마술처럼 나오는 언변에 혀를 두르던 독자들이 쪼로로 줄을 섰다. "날 선 비판보다 훈훈한 팬클럽 분위기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김태훈의 마지막 인사처럼 김태훈님의 싸인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의 눈은 팬심 가득한 하트가 되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서포터즈 2기 글 | 야식대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