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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재학기간 자료 (2006~2013)/Ethical Principles (윤리학개론)

[윤리학개론] Ethical Principles - 기말고사 모범답안

by Warm-heart 2011. 6. 23.

윤리학개론 기말고사 모범답안

 

1.     윤리학의 성격과 그 한계에 대해 서술하시오

-         윤리학의 성격은 학제적 성격과 논쟁적 성격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우선 학제적이란 서로 다른 분야로 간주되었던 학문들이 서로의 연구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제간 논의가 나오기 이전에는 분야를 분화하고 쪼개어 세밀화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었다. 때문에 생명윤리, 환경윤리 등 수 많은 윤리학의 하위분야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오히려 학문의 시야를 좁히는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윤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독립적이지 않고, 다른 학문과 연계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학문간 교류가 중시된다. 이를 윤리학의 학제적 성격이라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윤리학은 논쟁적 성격을 갖는데, 이것이 윤리학의 한계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흡연권을 보장하는 것과 혐연권을 보장한 것 중 어느 것이 윤리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우 윤리학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 이를 윤리학의 논쟁적 성격이자 윤리학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2.     결과주의 윤리설과 비결과주의 윤리설에 대해 비교 진술하시오

-        어떤 행위의 윤리적 가치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판단의 기준을 행위의 객관적 결과에 둘 것인가, 아니면 내면적 동기에 둘 것인가에 따라 결과주의 윤리설과 비결과주의 윤리설로 나뉜다. 이는 각각 목적론적 윤리설과 의무론적(동기주의) 윤리설로 표현되기도 한다.

 

결과주의 윤리설은 행위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행동이야 어찌되었든 결과가 선하면 그 행위 또한 선하다고 본다. 이러한 결과주의 윤리설은 비결과주의 윤리설에 비해 신축성이 있으며, 도덕적 딜레마의 해결에 있어 유용하며, 의사결정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도덕 추론의 절차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결과에 몰입한 나머지, 내면적 동기의 문제를 소홀히 하여, 사회의 균형적인 질서 유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일상적인 도덕적 직관과 상충하는 결론을 내며, 도덕의 인격성을 무시한다. 마지막으로 결과 계선의 난점을 들 수 있다. 결과의 무한한 인과 연쇄를 계산하기도 어렵고 결과를 고려함에 있어 정형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개인간의 결과를 비교할 수 도 없다.

 

비결과주의 윤리설은 결과가 아닌 행위자의 동기에 의해 옳고 그름이 정해진다고 본다. 이는 일상적 도덕 의식과정합적이다. 다만 규칙이나 의무의 절대성을 강조함에 따라 규칙 숭배에 빠질 수 있으며, 도덕적 딜레마 해결에 난점을 보인다. 이는 아무리 동기가 선하다고 할 지라도 그 것이 결과의 선함을 보증하지는 않기 대문이다. 사회는 질보다는 양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행위의 동기의 옳고 그름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결과에 소홀해져 원치 않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3.     이타주의를 이론적 도구로 삼아 이기주의를 설명하라

-         에덤스미스의 국부론에 따르면, 한 명의 개인이 스스로의 이윤창출을 위해 경제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위적인 사실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윤창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그 사회의 전체적인 부가 증가한다는 전제에서 옳은 명제이다. 하지만 개인이 스스로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갖은 편법을 동원한다면 이는 이윤의 양적 증가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개인의 이익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우리는 이타주의를 이기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써 활용할 수 있다. 애덤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이 박애심, 희생 등과 같은 이타적 요소보다 더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타심을 배제한 것이 아니며, 이기적 본능에 더 충실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4.     무엇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긍정적 당위보다 부정적 당위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는가?

-         당위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주로 부정적 당위를 먼저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중립적 단어인 당위를 떠올릴 때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부정적 당위를 연상하는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정적 당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하지 말라, ~는 금지되어 있다 와 같이 금기시, 계율시 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긍정적 당위보다 부정적 당위가 많이 사용 되는가? 이는 어쩔 수 없어서그렇다. 다시 말해 실현가능성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부정적 당위의 대표적인 사례가 기독교의 계율 중 하나인 십계명이다. 만일 살인을 하지 말라 등과 같은 부정적 당위를 긍정적 당위로 바꾸면 사람을 살려라가 된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워도 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충분히 지킬 수 있지만, 사람을 살리라는 것은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일본에 큰 재앙이 닥친 적이 있다. 이 경우 사람을 살려라와 같은 긍정적 당위가 통용되는가? 이는 부분적으로 가능할 뿐, 결국 불가능하다. 결국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면 실현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부정적 당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